유연한 업무 일정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치는 이유

오늘은 월요일.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크리스마스와 새해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어있는 월요일—시간의 개념은 흐릿하고, 이메일은 (대충) 조용하며, 모두가 대외적으로는 “일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무도 내가 업무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으면 하는, 그 달력 속 경계의 순간. ...

일을 하는 것도 자유이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자유이고,
그런데 어느 쪽을 선택해도 어딘가 찜찜하다.

유연한 업무 일정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미국) 교수들의 삶은 부러울 만큼(솔직히 말해, 거의 특권에 가까운) 자유를 제공합니다. 출퇴근 기록도 없고, 정해진 근무 시간도 없으며, 매일 아침 오전 9시에 출근을 했는지 안했는지 확인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자유가, 오히려 정해진 일정 속에서 일할 때보다 우리를 더 지치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Art Prints

유연한 업무 일정은 업무량 감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일을 멈출 수 없게 만들뿐...

아이러니하게도 유연한 일정이 업무량을 줄여주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 업무를 둘러싼 경계를 녹여버릴 뿐이죠.

강의는 연구로 스며들고, 연구는 행정 업무로 번지며, 행정 업무는 이메일로 이어집니다. 이메일은, 쉬고 있어야 할 때—식사 중이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혹은 ‘잠깐 쉬는 중’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지면서도 생산적인 무언가를 해야할 것 같은 죄책감이 드는 그 순간에도—뇌 속에서 계속 웅웅거리는 배경 소음이 됩니다.

업무일정이 유연해지면 '일'은 더 이상 시작하거나 끝나지 않습니다. 그냥… 존재할 뿐입니다.

자율성은 당신을 감독관처럼 만든다

언제 일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대부분의 책임감 있는 교수들은 자기 스스로를 끊임없이 감독하고 채찍질하게 됩니다.

당신은 자신의 상사이자, 프로젝트 매니저이며, 생산성 앱이 됩니다. 하루 중 어느 순간에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읽고, 더 쓰고, 무언가를 더 최적화할 수 있었을 것처럼요.

'유연성'은 외부에 존재해야 할 관리/감독의 역할을 내면화된 심리적 압박으로 바꿔 놓습니다. 명백하게 뒤처진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모든일을 끝냈다고 느끼는 순간도 없습니다.

피로는 인지적인 이유로 시작된다

이 피로는 단순히 근무 시간이 길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조각조각 파편화 되어버린 인지 상태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강의하고, 학생을 지도하고, 논문을 심사하고,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이메일에 답하는 일을 오가며 보내는 하루는 결코 유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지적으로 격동적인 하루입니다. cognitively violent30분마다 정체성을 바꾸고, 그 각각을 모두 능숙하게 수행하라는 요구를 받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끝날 즈음, 무거운 것을 하나도 들지 않았는데도 이유를 알 수 없을 만큼 녹초가 됩니다.

A pocket watch partially buried in sand, symbolizing exhaustion.

유연한 일정은 보이지 않는 지원을 전제로 한다

유연성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이미 갖춰져 있을 때 가장 잘 작동합니다.

  • 정해진 시간
  • 감정적 여유
  • 최소한의 가족·돌봄 책임
  • 일을 훼방하지 않는 삶 (=불가능)

그 외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연성이란, 삶의 나머지 틈이 허락하는 순간에 일이 끼어드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대개는 늦은 시간에, 지친 상태로, 그리고 죄책감을 동반한 채로요.

하루의 공식적인 끝은 없다

유연한 일정의 진짜 문제는, 언제 일이 끝났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도 없고, 퇴근을 알리는 순간도 없으며, 눈에 보이는 명확한 마침표도 없습니다. 그래서 쉼은 자의적이고, 심지어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그 결과, 쉬면서도 반쯤 일하고, 일하면서도 반쯤 쉽니다. 어느 쪽도 온전히 하지 못한 채로요.

다시, 오늘로

그래서 우리는 다시 크리스마스와 새해 사이에 있는 이 월요일로 돌아옵니다.

일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말리지 않을 겁니다.
일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면, 그 이유는 유연성이 허락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연성은 그저 선택권을 당신에게 쥐여주고, 그 선택과 함께 홀로 견디고 있으라고 할 뿐입니다.

그냥 내멋대로의 결론

어쩌면 이 피로는 우리가 규율이 부족해서도, 시간 관리가 서툴러서도 아닐지 모릅니다. 가장자리가 없는 일은, 조용히, 하지만 분명히,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집어삼키기 때문일지도요.

유연성이 이미 현실이 되었다면, 우리는 학계에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한 가지를 다시 배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멈추는 것은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멈추는 것은 그저 '경계'일 뿐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경계'는 '자유'의 반대가 아닙니다. 자유를 '사용할 수 있는 무언가'로 만들어 주는 것이죠.

…이상, 오늘도 마감에 쫓겨 허겁지겁 메일을 보냈다가
“현재 부재중입니다(I’m out of the office)”라는 자동 회신을 보고 멘탈이 살짝 나간 (사실 화가 좀 난) 밀레니얼 교수였습니다. I’m out of the office.

추천하는 읽을거리

칼 뉴포트(Cal Newport)의 Deep Work 은 개인적으로 꽤 큰 깨달음을 준 책이었고, 왜 학문적 일이 이렇게까지 지치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유료 홍보 아닙니다)

아래 책들은 제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리스트에 영원히 올라가 있는 책들입니다 (언젠가는 읽겠지요?). 혹시 읽어보신 분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이것도 역시 유료 홍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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